
국내 바이오 벤처 산업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오스코텍 창업주 김정근 고문이 별세했다는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연구자이자 동시에 기업가로서 신약 개발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던 그의 발자취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 큰 울림을 주는데요. 단순히 한 기업인의 삶이 아니라 치의학자, 생화학 연구자, 교수, 그리고 벤처 창업가로서 한국형 신약개발 모델을 개척한 인물이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이번 김정근 고문의 별세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삶이 우리 바이오 산업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안정적인 교수직을 뒤로하고 벤처의 길을 선택했던 그의 용기, 그리고 뚝심 있게 신약 개발에 매진했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이번 글에서는 김정근 고문의 생애와 오스코텍의 창업 배경, 그리고 그가 남긴 주요 성과들을 살펴보면서, 오스코텍 김정근 고문의 별세가 우리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함께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오스코텍 창업주 김정근 고문의 발자취
김정근 고문은 1960년 2월 강원 춘천에서 태어나 향년 65세로 미국에서 타계했습니다. 연구자 출신 창업가라는 그의 상징성은 국내 바이오 업계에서 매우 독특한데요. 그는 의료, 기초과학, 그리고 사업화를 모두 경험한 복합형 인재로, 기술 중심 기업가의 전형으로 꾸준히 거론되어 왔습니다. 그의 학문적 기반은 매우 탄탄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치의학 학사·석사·박사를 거쳐 생화학 분야에서도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생화학교실 교수로 재직하며 강단에 섰고, 한국생체재료연구소장을 역임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치과대학 구강생물학 교환교수로 활동하는 등 해외에서도 연구 역량을 쌓았죠. 이런 배경은 뼈, 관절, 치주질환 및 항암 분야 신약 개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자본만으로 회사를 세운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시작한 과학자 CEO였다는 점이 오스코텍의 정체성을 만드는 핵심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 출생: 1960년 2월, 강원 춘천 (향년 65세 타계)
- 학력: 서울대학교 치의학 학사·석사·박사, 생화학 박사
- 주요 경력: 단국대학교 치과대학 생화학교실 교수, 한국생체재료연구소장, 바이오벤처협회 이사, 하버드대학교 교환교수
- 직함: 오스코텍 창업자, 최대주주, 고문
그의 삶은 단순한 학자나 경영자를 넘어, 한국 바이오 신약 개발의 선구자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오스코텍 창업과 성장: 신약 개발의 뚝심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김정근 고문은 안정적인 교수직을 뒤로하고 벤처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선택이었죠.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시작한 오스코텍은 소규모 연구실에서 출발해 뼈 대사 연구와 건강기능소재, 진단키트 사업으로 초기 현금 흐름을 확보했습니다. 이른바 ‘캐시카우 확보 후 신약 투자’ 전략을 통해 많은 바이오벤처가 좌초하던 시기에 비교적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코텍은 초기에는 뼈 관련 진단키트 및 건강기능식품 소재 사업에 집중했습니다. 이후 골다공증, 관절염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요. 궁극적으로는 항암제 중심의 혁신 신약 개발이라는 장기 목표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러한 단계적인 사업 전환은 단기 매출과 장기 연구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형적인 바이오 경영 전략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국산 항암제 ‘렉라자’ 탄생의 초석
김정근 고문이 가장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역시 국산 항암제 개발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원천 기술 개발은 오스코텍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성과인데요. 오스코텍과 자회사 제노스코가 발굴한 이 후보물질은 이후 유한양행에 기술이전 되면서 공동 개발이 진행됐습니다. 결국 글로벌 시장에 진입했고, 국내 신약으로는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쾌거로 이어지면서 국내 제약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렉라자는 단순히 매출을 넘어 ‘국산 기술도 글로벌 임상과 허가를 통과할 수 있다’는 강력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는 국내 바이오 산업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린 중요한 계기가 되었죠. 오스코텍 김정근 고문의 선견지명과 뚝심 있는 연구 투자가 없었다면 이러한 성과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분야: EGFR 변이 비소세포폐암 표적 항암제
- 의미: 오스코텍 원천 기술 기반, 국내 신약 최초 미국 FDA 승인
- 영향: 사: 국산 기술의 글로벌 경쟁력 입증, 한국 바이오 산업 발전의 상징
렉라자의 성공은 오스코텍뿐만 아니라 한국 바이오 산업 전체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오스코텍 김정근 별세 이후의 과제
최근 몇 년간 오스코텍은 자회사 제노스코의 별도 상장을 둘러싼 주주들과의 갈등으로 경영권 이슈를 겪기도 했습니다. 회사 측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위한 자금 조달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일부 주주들은 기업가치 분산과 ‘쪼개기 상장’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결국 주주총회에서 대표 재선임이 부결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고, 김정근 고문은 고문직으로 물러나 연구와 전략 자문에 집중해왔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전해진 오스코텍 김정근 고문의 별세 소식은 회사 내부와 시장 모두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번 별세로 상속에 따른 지분 구조 변화, 최대주주 지위 변동, 그리고 경영 체제의 안정성 확보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김정근 고문은 오스코텍 지분 12.45%를 보유한 최대주주였거든요. 다만 회사는 현재 기존 경영진과 이사회 체제 아래 연구개발 및 사업 운영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겠다는 입장입니다. 사실 김정근 고문이 2025년 3월에 이미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영 공백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자 개인의 리더십에서 조직 중심 경영으로 전환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오스코텍의 장기 파이프라인과 글로벌 파트너십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느냐가 향후 기업가치의 핵심 변수가 될 것입니다. 연구개발 중심 기업으로서 기존 파이프라인을 차질 없이 이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스코텍 김정근 고문의 별세 이후 회사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오스코텍 김정근 고문은 언제, 어디서 별세했나요?
A1: 김정근 고문은 현지시간 4일 미국에서 타계했으며, 향년 65세입니다.
Q2: 오스코텍 김정근 고문의 별세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A2: 최대주주였던 김정근 고문의 지분 상속 절차로 인해 지분 구조 변화 및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오스코텍은 현 경영진과 이사회 체제를 통해 사업 운영과 연구개발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Q3: 김정근 고문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으로 평가받나요?
A3: 국산 항암제 렉라자(레이저티닙)의 원천 기술 개발을 통해 국내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중요한 선례를 남긴 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