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탐험가들의 성지, 너티 퍼티 동굴
너티 퍼티 동굴은 1960년대 처음 발견된 석회동굴로, 동굴 내부는 항상 섭씨 12도 정도를 유지하는 온수동굴이기도 합니다. 전성기에는 연간 2만 5천 명이나 찾을 정도로 동굴 탐험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었죠.
이 동굴은 관광용이 아닌 익스트림 레저 스포츠용 동굴이었습니다. 성인 남성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비좁은 통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전문 케이빙 경험 없이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동굴 내벽은 점토질 진흙으로 되어있고, 깊이는 약 43~44미터 정도 됩니다. 동굴 이름인 '너티 퍼티(Nutty Putty)'는 최초 발견자인 데일 그린이 지은 건데요. 내부가 좁고 물이 흐르는 곳이라 방문하고 나면 진흙 범벅을 피할 수 없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버스 커낼과 에드스 푸시, 악명 높은 구간들
동굴 내부는 '빅 슬라이드', '버스 커낼', '밥스 푸시' 같은 이름이 붙은 여러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특히 '버스 커낼(산도)'이라는 구간은 성인 남성 한 명이 기어서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비좁고 긴 통로였는데요.
버스 커낼 끝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일반 탐험 코스의 종착점인 ‘밥스 푸시’로 이어지는 구멍이고, 다른 하나는 초보자가 절대 들어가선 안 되는 ‘에드스 푸시’로 연결되는 구멍이었습니다.
2009년 11월 24일, 그날 밤의 비극
26세의 존 에드워드 존스는 버지니아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고향을 방문한 그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가족들에게 알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11월 24일 오후 8시, 존은 동생과 친구들 9명과 함께 동굴 탐험에 나섰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와 동굴 탐험을 한 경험이 있던 그였지만, 너티 퍼티 동굴은 처음이었습니다.
동굴에 들어간 지 약 1시간 후, 존은 두 개의 구멍 중 하나를 선택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들어간 곳은 일반 코스가 아니라 전문가용 구간인 에드스 푸시였던 거죠. 좁은 통로를 따라 계속 내려가던 그는 결국 몸이 완전히 끼어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존은 거꾸로 매달린 자세로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27시간의 사투, 그리고 안타까운 결말
일행들이 존을 빼내려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구조대가 출동했습니다. 총 137명의 구조 인력이 투입되어 온갖 방법을 동원했는데요.
발에 로프를 걸고 당겨보려 했지만 부상 위험이 너무 커서 포기했습니다. 주변을 폭파시켜 공간을 넓히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동굴 전체가 무너질 위험 때문에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존은 27~28시간 동안 거꾸로 매달린 채로 갇혀있다가 호흡곤란으로 2009년 11월 25일 사망했습니다. 시신조차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족과 관계자들은 시신 수습을 포기하고 동굴을 영구 폐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구 폐쇄된 동굴, 16년째 그곳에
2009년 12월 2일, 너티 퍼티 동굴 입구는 콘크리트로 완전히 밀봉되었습니다. 동굴 입구에는 존 존스를 기리는 명패가 부착되어 있고, 그는 지금도 동굴 안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2009년 이전에도 동굴에서 끼이는 사고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1999년, 2001년, 2004년에도 탐험객들이 갇혔다가 구조되는 일이 반복되었죠. 존 존스 사건은 그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인 결과를 낳은 사고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왜 시신을 꺼내지 못했나요?
Q. 동굴은 완전히 폐쇄되었나요?
Q. 존 존스는 왜 그곳에 들어갔나요?
Q. 동굴 탐험은 안전한 활동인가요?
너티 퍼티 동굴 사건은 모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비극적인 사례입니다. 아무리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자연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죠. 지금도 그곳에는 한 젊은이의 꿈과 희망이 함께 묻혀있습니다.



